바비
Kitsch
2023. 7. 20. 01:34
Barbie
지금까지 보았던 상업 영화 중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메시지는 말하면 입 아플 테니 넘어가고 일단 영화의 흐름 자체는 뻔했다. 그러나 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영화였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특히 대한민국 관객들에게는 이 정도로 쉽게 떠먹여 주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되는 이들이 많다.
물론 배우를 사용한 메타 개그라던가, 영화사에 대한 언급, 회사 상표명을 그대로 들어낸-어떻게 보면 거대한 마켓팅 현장 같았다.- 과감함은 고유성을 지녔다 해도 무리가 없다. 사실 바비 자체가 대단한 고유성이긴 하지만.
스포일러 주의
개인적인 눈물 포인트들
영화관에서 마지막으로 운 게 몇 년 전인지 가물가물한데 영화를 보는 도중 3번의 장면에서 내리 울었다.
1. 바비가 처음 LA에 도착해 자신 옆 노인 여성을 만나는 장면.
-I knew it.
바비는 처음으로 바비랜드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에서 현실의 다양한 사람들을 지켜보고 자신을 가지고 논 여자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 뒤 자신 옆에 앉아있는 노인과 마주 본다. 물론 바비랜드에는 노인이 없다. 할머니 바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는 여기서 노화에 대해 질문하는 걸까 싶었다. 그러나 바비가 뱉은 말은 아름답다는 찬사였다. 그리고 그 말에 노인은 웃으며 알고 있다고 말한다. 저 대사는 시작 시점 바비랜드의 바비들끼리도 주고받는 말이다. 그 순간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노인이 장난스럽게 알고 있다는 말을 한 것을 보고 문득 눈물이 나왔다. 이 영화가 여성에게 얼마나 다정한지 보여주고 있었고 그 장면 자체가 너무 아름다웠다.
2. 글로리아의 필리버스터
이건... 정말 직접 봐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글로리아는 우울에 빠진 자신의 바비에게 여자로 산다는 것은 힘든 거구나,라며 자신이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부조리함과 불평등을 나열하고 나열한다. 필리버스터라는 말 외에는 어울리는 단어가 없다. 동서양을 막론한 공통적인 차별은 둘째로 하고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강함을 보여준다. 글로리아는 이 영화의 원인이자 해결책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바비가 현대의 어린 여성들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면-정확히는 그래도 된다, 의 따뜻한 메시지- 글로리아는 조금 윗세대의 여성들을 대표하며 엄마 세대의 현명함과 어쩌면 당연한 사람으로서의 행복을 찾는 방법까지 보여주고 있다.
3. 바버라 핸들러
영화의 막바지, 바비는 인간이 되고 싶어졌다. 처음의 하이힐과 샌들 사이에서 망설임 없이 하이힐을 고르고 영화 중후반부 더는 아름답지 않다면서 엉엉 울던 모습은 사라지고 만들어진 인형이 아니라 무언가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말하면서 바비는 사람으로 살게 된다. (많이 생략한 설명임으로 영화를 꼭 보도록 하자.) 그 대화 중 바비의 발명가이자 마텔의 창업자인 루스 핸들러의 유령과의 대화를 하면서 나오는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 회상이 지나가는 순간, 당연한 아름다움은 마주한 기분이었다.
좋았던 부분
1. 바비들이 바비들의 역할로 인해 현실 세계의 페미니즘과 평등함이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정말 재밌었다. 인형이니까 할 수 있는 나이브한 발상이면서도 동시에 바비니까 그럴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2. 바비는 켄을 사랑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켄을 사랑하는 다른 바비도 있다. 그러나 주인공인 바비는 켄을 끝까지 사랑하지 않는다.
3. 마텔에 대한 표현은... 바비라는 영화는 일종의 거대한 마켓팅임과 동시에 엄청난 비꼼이다. 이걸 현실의 마텔이 모르진 않았겠지만 오히려 이런 내용을 허용함으로써 얻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취하는 쪽은 현명했다고 본다.
4. 메타 개그. 바비(마고 로비)가 울며 자신은 더는 아름답지 않다고 하는데 나레이션으로 '이런 대사 시킬 거면 마고 로비 캐스팅 하지 마세요.'가 나온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본다.
5. 켄은 바비랜드에서 현실의 여성과도 같은 위치다. 중요 요직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바비의 부속품으로 살며 재산도 집도 차도 없다. 그래서 켄들의 반란(ㅋ)이 일어나고 그것이 진압되는 장면에서도 그들이 밉지 않았다. 페미니즘 영화에서 페미니스트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은 이미 차별이 이루어진 세상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영화가 보여주는 것인데-좀 더 풀어쓰자면 남자 여자 모두 잘 살자! 같은 나이브함을 포함한다. 기울어진 저울에서 중립 박으면 가해자 편이다.- 이 영화는 이미 켄에게 현실 여성의 위치를 줬다. 나레이션으로도 그것을 잘 표현해주고 있고 그리하여 켄과 바비 모두 잘 살자! 같은 엔딩임에도 이게 진짜 현실의 남성을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6. 주인공 바비는 전형적인 바비다. 그리고 그 전형적인 바비가 인간으로 살게 된다는 결말은 정말 다른 인형도 아니고 '바비'라서 의미가 있었다. 아마 이 정도의 완결성은 더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과거 이니셰린의 밴시 후기 중 쓴 말이 있다.
2023.05.20 - [Kitsch] - 이니셰린의 밴시
이니셰린의 밴시
The Banshees of Inisherin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는 마틴 맥도나의 연극 ≪이니셰린의 밴시≫를 마틴 맥도나가 영화화한 작품이다. 쓰고 보니 말장난 같기도 한데 역시 거장이라고 불릴 위치면 자
kitsch-and-camp.tistory.com
뭘 표현하고 싶고 그 표현을 어떻게 은유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 던질 것인가에 대한 망설임이 없다. 잘 만들어졌다는 건 그만큼 아쉬웠다고 꼬집을만한 부분이 없다는 이야기
바비는 완벽하다는 찬사가 독이라고 느껴질만큼 잘 만든 영화다. 사실 완벽할 필요도 없다. 존재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들은 분명 존재하니까.
<매우 주관적인 평가>
스토리 ★★★★☆
방법론 ★★★★☆
창작자의 아이덴티티 ★★★★★
사회문화적 의미 ★★★★★
예술적 감동 및 통찰 ★★★★★
총합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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